𝚁𝚎𝚕𝚊𝚝𝚒𝚘𝚗𝚜𝚑𝚒𝚙

 
家原靜美와 高杉晋助의 관계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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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이에하라가 먼저 말을 걸면 타카스기가 대답해 주는 관계였다. 동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철저한 비즈니스, 그저 자신과 목표가 똑같기 때문에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였다. 선을 지켰으며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꺼내지 않았다.

 타카스기가 하루사메와 손을 잡으려고 했을 때 그와 심하게 다퉜다. 천인들의 도움을 받을 바에 죽는 게 낫겠다, 귀병대에서 나가겠다는 등의 말을 했다. 간부조의 끊임없는 설득으로 인해 귀병대를 나가는 사태는 막았지만 타카스기와 여전히 냉랭한 상태였다.

 타카스기와 다투고 며칠이 지난 후, 이에하라는 타카스기가 보이자 그에게 인사를 했다. 저번 일은 전부 잊어버렸나보지? 타카스기는 그녀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자 의문이 들어 말을 건넸다. 이하라는 아차 싶었는지 잠시 생각을 하다가 타카스기, 네가 하루사메와 손을 잡는 데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뭐, 이제는 됐어. 다른 애들한테 계속 들었으니까. 이에하라는 며칠 동안 타카스기의 행동에 대해 간부조가 여러 번 말해줘서 그들의 설득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타카스기는 금방 태도가 바뀌는 그녀의 행동이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그때 이에하라는 타카스기의 미소를 처음 봤다. 미소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에하라는 귀병대에 스며들었고 없으면 허전한 존재로 자리 잡았으며 이에하라 본인도 귀병대를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부하들과 두터운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에하라는 가족처럼 여기는 귀병대에게도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오드아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두 눈의 색이 다른 걸 가지고 괴롭힘을 당해서 만약 귀병대에게 들키면 괴물 취급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에 이에하라는 자신이 오드아이란 걸 죽을 때까지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이 오드아이라는 걸 아주 간단히 들키게 된다. 이에하라가 안대를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타카스기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에하라는 잠시 벙쪄 있다가 다급하게 안대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무슨 일 때문에 날 찾아왔어? 그녀는 최대한 이 상황을 넘어가려고 했다. 타카스기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두 눈의 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걸 쓰고 다니고 있던 건가? 타카스기의 입장에서는 그저 궁금해서 물어본 걸수도 있지만 이에하라한테는 그의 말이 고작, 그것 때문에 쓰고 다녔냐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타카스기,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대로 말하지 말아 줄래."
"색 하나가 다르다고 해서 네놈을 이상하게 보는 녀석은 귀병대에 없어."
"... 어떻게 확신하지?"
"그런 녀석이 있다면 네가 베어버려도 상관하지 않겠다. 귀병대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면서. 그럼 믿어보지 안 그래?"

 타카스기는 말을 뱉고선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이에하라는 타카스기의 말에 아무런 반응조차 못하고 멀어져 가는 타카스기의 등만 바라봤다. 이에하라는 그의 말을 듣고선 결심이라도 한 듯이 마타코를 불렀다. 마타코는 중얼거리며 이에하라가 있는 곳으로 갔고 이에하라는 머뭇거리다 천천히 안대를 벗었다. 그리고 살짝 떨며 왼쪽 눈을 떴다. 마타코는 이에하라의 두 눈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놀랐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에하라는 무반응인 마타코 때문인지 어정쩡한 웃음을 지었다. 그냥 잊어. 괜히 보여준 것 같네. 그녀가 안대를 쓰려는 찰나 마타코가 신기한 거라도 본 것처럼 눈을 반짝였다. 오드아이임까? 이에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데 괴물... 같이 보이니까 안대 쓰는 게 낫겠지? 에, 무슨 말임까. 예쁜데요? 마타코는 이 말을 뱉고선 자신도 몹시 당황했는지 입을 틀어막았다. 마타코의 말을 들은 이에하라는 몇 초동안 가만히 있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응? 정말? 그런 소리... 부모님 빼고 처음 들어. 진짜야? 거짓말 아니고? 거짓말 아님다! 이상하지도 않으니까 그만 물어보십쇼! 마타코는 계속 되묻는 이에하라를 밀어내고 얼른 자리를 떠났다.  

 이에하라는 마타코의 말 덕분인지 자신감이 생겨 반사이와 타케치를 찾아갔다. 창가 근처에서 이야기를 하는 반사이와 타케치가 보이자 이에하라는 얼른 달려가 무작정 둘의 앞에 섰다. 항상 쓰고 다니던 안대는 이에하라의 손에 있었고 반사이와 타케치는 그녀의 오드아이를 처음 보게 됐다. 이에하라, 오늘은 왜 안대를 쓰지 않았소? 심정에 무슨 변화가 생긴 거 아닐까요, 반사이 상. 이에하라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들의 말에 대답을 했다. 울보가 괜찮다고 해서 안 써봤는데 어때? ...이상하지는 않아? 동물 같이 생긴 천인도 존재하는데 눈동자 색, 하나가 달라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소. 반사이 상의 말이 맞죠. 오히려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타케치는 반사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이에하라는 간부조의 말을 듣고 마음을 먹었는지 자신과 친한 대원들한테 자신의 눈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고 대원들의 반응은 간부조와 다르지 않았다. 이에하라는 기분이 좋아져 노래를 흥얼거리다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에하라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타카스기가 있는 장소였다. 이에하라는 그가 한 말 덕분에 자신감을 얻어서 여러 사람들한테 자신의 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라 타카스기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그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곰방대를 피며 먼 곳을 응시하는 타카스기가 보이자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

"고마워. 애들이 전부 다 이상하지 않다고 해줬어. 타카스기, 너는 어때? 내 눈 말이야."
"평범해. 그냥 하나만 다른 것뿐이잖아."

 이에하라는 타카스기의 말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타카스기 옆에서 '타카스기'말고 '신스케'라고 불렀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입을 먼저 뗀 건 이에하라였다.

"이름으로 불러주는 건 어때?"
"이름으로 불리는 거 싫어하지 않았나?"
"신스케라면 괜찮을 것 같아서"
"원래부터 귀병대는 서로 이름을 불렀어. 이에하라, 너만 다른 거였지만."
"그럼 오늘부터 나도 이름으로 불러주면 되겠네."

 이에하라는 웃으며 그를 응시했다. 다음부터는 이름으로 불러줘. 그리고 곧바로 머쓱했는지 먼저 자리를 떴다. 타카스기는 이에하라의 행동이 제법 웃겼는지 입꼬리를 올리며 창 밖을 바라봤다.

 이에하라는 오드아이라고 밝힌 후에도 여전히 안대를 쓰고 다녔다. 가끔씩은 벗고 다니기도 한다. 몇십 년간 쓰고 있던 걸 갑자기 쓰지 않으려고 하니 어색하기 때문. 이 일이 있고 난 후 이에하라와 타카스기가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는데 이에하라는 타카스기를 신스케라 부르고 타카스기는 이에하라를 시즈미라고 불렀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진 걸 알아차린 귀병대 대원들이 저 둘이 무슨 일 있었냐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간부조도 마찬가지. 타케치는 타카스기가 이에하라를 이름으로 부르는 걸 보고 자신도 시즈미라고 불렀다가 이에하라한테 발로 차였다. 타카스기만 이에하라를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하라는 타카스기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그가 혼자 있을 때는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 이런 둘 사이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된 후다.

 평소처럼 이에하라는 혼자 있는 타카스기에게 다가가서 오늘은 어땠냐며 말을 걸었다.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이에하라는 저번에 본 백발 사무라이가 생각났다. 아, 저번에 말했던 백발 사무라이가 누구야? 백야차를 모르는 건가? 타카스기는 역으로 물었다. 아는 게 없어서 모르지. 이에하라는 어깨만 으쓱하며 그의 말에 대답을 했다. 타카스기는 백발 사무라이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이에하라는 말이 없는 타카스기를 보고선 그에 대해 꺼내고 싶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바꿨다. 이에하라가 귀병대에 들어와서 겪게 된 이야기, 소소한 일상들을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타카스기는 자신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어느 서당에 들어가서 누군가를 만났고 그 사람을 무척이나 따랐다며.

 자신의 과거를 말해주는 타카스기의 말에 이에하라는 아무런 표정 없이 듣기만 했다.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동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타카스기의 말만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에하라는 자신의 과거를 천천히 이야기 했다. 가족을 두 번 잃게 된 것, 어쩌다 양이지사의 길을 걸어가게 됐는지 등. 타카스기도 이에하라와 마찬가지로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에하라의 말이 끝날 때까지 듣기만 했다.

"우리 둘 다 평탄하게 살아온 것 같지는 않군."
"그러게."

 이에하라는 짧게 대답하고 옷 안쪽에 있던 담배 한 개를 꺼내며 불을 붙였다. 타카스기는 담배를 피는 이에하라를 쳐다보다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에하라는 눈웃음을 지었다. 뭘 그렇게 빤히 바라보는 거야? 타카스기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에하라가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둘 사이에는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건 이에하라였다.

"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자, 신스케. 난 간다."

 이에하라는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떴고 타카스기는 이에하라 뒷모습만 바라보가다가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된 후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이에하라는 타카스기가 보일 때마다 그를 부르며 달려갔고 타카스기는 그런 이에하라는 막지 않았다. 이러한 일상이 계속 지속되자 이에하라는 서서히 타카스기에 대해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자각이었다. 자신은 타카스기의 부하이니 그의 곁에 있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가 하는 말이면 따르는 게 맞기 때문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타카스기의 얼굴을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뛰긴 했지만 이건 살아가기 위해서는 뛰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타카스기가 누군가와 가까이 있는 걸 보면 가슴 어딘가 답답한 느낌이 생기는 걸 알게 되었고 이러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던 이에하라가 반사이에게 물어보고 난 후 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에는 부정했다. 요즘 같이 있던 시간이 많아져서 혼란스러운 거라고. 애써 부정을 했지만 타카스기의 얼굴을 볼 때마다 반사이의 말이 떠올랐고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을 피하는 일이 많아지자 결국에는 본인의 감정을 받아드리기로 했다. 대신 절대 타카스기에게 들키지 말자고 다짐을 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에 있어 어리숙한 이에하라는 너무나도 쉽게 들키게 된다. 이에하라는 그에게 들켰지만 오히려 가뿐하다는 표정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번 고백을 한다. 항상 거절당하지만. 이에하라를 본 귀병대 대원들은 뻔뻔하게 고백하는 그녀 때문에 타카스기를 당황하게 만들기 위해서 저런 행동을 한다고 재밌다며 웃기만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 삼아 타카스기에게 고백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매번 진심을 담아 타카스기에게 고백을 한다. 타카스기는 이에하라가 자신에게 고백을 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져있는 걸 알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감정을 전달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본인의 감정을 모르기 때문에 거절하는 것이다.

 이런 타카스기가 이에하라를 받아주게 된 계기는 이에하라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때. 
 
 어느 날, 홀로 외출한 이에하라가 배로 돌아오는데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배를 움켜잡고 걸어오는 듯 했으나 중간에 쓰려지고 말았다. 주변에 있던 대원이 놀라서 그녀에게 달려갔다. 자세히 보니 온몸은 누구 것인지 모르는 유혈이 묻어있었고 특히 그녀의 옆구리쪽에는 울컥하며 붉은 피가 나오고 있었다. 대원은 얼른 이에하라의 옆구리를 지혈하면서 누구 없냐고 소리를 쳤다. 마침 그 근처를 걸어가고 있던 반사이가 그녀와 대원을 발견했고 당황하며 그들에게 뛰어갔다. 반사이는 대원에게 치료반을 데리러 오라 했다. 대원은 알겠다며 일어나 자리를 떴고 남아있던 반사이는 이에하라가 정신을  차리도록 계속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 정신 잃으면 안 된다며. 몇 분 후, 치료반과 이에하라의 소식을 들은 타카스기도 같이 왔다. 이에하라는 희미하게 타카스기의 형체가 보이지 힘겹게 눈웃음을 지었다.
 
"에, 신스케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출혈이 더 심해지잖아."
"으응, 걱정도 해주고. 좋다."
"네놈은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거냐. 우선 정신 잃지 않도록 해."
"지금도 최대한, 노력 중이라고..."
"알겠어, 알았으니까 말은 하지 마."
 
 이에하라는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타카스기의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이건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한 수단이랄까. 그녀는 뻐금거리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타카스기는 그녀의 말을 바로 알아차렸다. 놓지 말고 있어라. 이에하라는 자신의 주위로 부산하게 움직이는 대원들의 소리가 들리니 꽤 심각한 상태인가 보다며 속으로 생각을 했다. 뭐, 하긴 중간에 쓰러졌는데. 누군가 옆구리 쪽을 지혈하고 들것에 옮겨져 이동하는 과정 속에서 이에하라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으면 원하는 초콜릿을 원하는 만큼 사줄 테니까 잃지... 시즈미? 자신의 옷깃을 잡고 있던 이에하라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지고 만 것이다. 타카스기는 얕은 호흡만 내쉬는 그녀의 상태에 걱정만 점점 커졌고 그저 이에하라의 이름을 여러 번 외치기만 했다. 타카스기는 치료실에 들어갈 때까지 이에하라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마타코와 타케치는 산소 호흡기를 달고 누워있는 이에하라를 보고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거라며 옆에 있던 타카스기한테 조심히 물어봤다. ...나도 모르겠군.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이에하라가 의식을 치료실에 들어간 지 딱 일주일이 되던 날. 이에하라는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아고, 머리야... 얼마나 누워있던 거지. ...신스케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노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울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이에하라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툭툭 쳤다. 그러자 마타코가 벌떡 머리를 들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선배, 저 보임까? 정신은 있고요? 으응, 다 보여.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아니! 선배 쓰러진 지 일주일이나 지났슴다!! 이대로 일어나지 못할까 걱정했는데! 우선 가만히 계심쇼. 치료반 데리고 올 테니까. 움직이면 딱밤임다!! 마타코는 얼른 자리에서 뛰쳐나가 대원을 부르러 나갔다. 환자한테 딱밤이라니... 생각보다 오래 누워있었네. 이에하라는 팔다리에 감각이 있는지 살짝 움직였다. 흐음, 전부 멀쩡하군. 옆구리는... 천천히 자신의 옆구리에 손을 갖다 대자 오돌토돌 만져지는 부분이 있었다. 흉터 남았네. 그래도 죽지는 않았으니까 된 건가~. 이에하라는 자신의 상태를 살피며 혼잣말만 계속했다. 
 
 몇 분 뒤, 마타코는 치료반 두 세명을 데리고 왔다. 방금 일어났는데 상태 확인 좀 부탁함다. 네, 잠시 검사만 할게요. 이에하라 님. 마타코는 잠시 자리를 빠져나갔고 이에하라는 대원들의 말에 따라 여러 검사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다. 마타코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된 건가? 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네요. 그래도 한동안은 과격한 움직임은 금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어~. 그럼 나가도 되지? 그럼요. 옷은 침상 아래에 있습니다. 전부 세탁을 했으니 바로 입으셔도 됩니다. 오냐, 고마워! 대원들은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갔고 이에하라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치료실에서 나왔다. 아이고야, 허리가 다 아프네. 어이, 울보! 선배는 진짜! 침착, 침착! 애들이 괜찮다고 했어. 별 이상 없고! 하, 일단 알겠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슴까? 응? 아니, 하하... 조금 긴데.

사실은 이에하라가 에도에 잠시 물건을 사려고 홀로 걸어 다니다가 천인에게 습격을 당한 것이었다. 귀병대를 만나기 전 천인의 그림자만 보이면 무작정 베기 일수였던 이에하라는 막부에서 그녀를 위험인물로 취급하고 추적하고 있었다. 천인들도 마찬가지. 이번에 이에하라를 습격한 천인도 그들과 같았다. 천인은 그녀를 뒤에서 찌르면서 네녀석 때문에 동료들이 전부 죽었다며 분노를 내뱉은 것이다. 이에하라는 검에 찔리자마자 앞으로 한 발짝 걸음을 내딛고 박힌 검을 몸에서 빼버렸다. 아이씨, 졸라 아프네. 동료가 죽어서 어쩌라고. 그럼 내 눈앞에 있질 말던가. 조잘조잘 주둥이만 놀리고 있네. 네 새끼 한 명이면 껌이야. 이에하라도 검을 꺼내 천인에게 휘둘렀다. 한 명? 멍청하긴. 네 녀석이 걸린 거야. 천인의 말에 숨어있던 여려 명의 천인이 나타났다. 하, 다 덤벼. 지나가는 개보다 못한 새끼들아. 이에하라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급소만 노려 한 명씩 처참히 죽여나갔다. 20여분이 지나고 바닥에는 천인들의 시체만 있었고 그 중심으로 유혈로 가득찬 이에하라만 비틀거리며 서있었다. 이번에는 좀 무리였나. 아까 찔린 게 너무 깊었던 것 같은데. 찔린 옆구리 쪽에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배까지 거리가 얼마지. 갈 수 있으려나... 이에하라는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힘들게 배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녀가 걸어간 길 위에는 몇 방울의 핏방울을 남겼다.

······ 라는 이런 일이 있었지? 그리고 배에 도착하고 몇 걸음 안 있다가 쓰러진 걸로 기억하는데. 어떤 짓을 했길래 천인한테 찔림까? 마타코는 이에하라가 종종 다쳐서 들어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게 천인 때문이라는 것도. 이에하라가 자신에게 직접 말해줬었기 때문이다. 간혹 천인이랑 싸울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치명상을 입고 돌아온 건 이번에 처음이었다. 하, 일단 방으로 돌아가십쇼. 움직이는 건 내일부터 하고. 알겠어, 우리 울보 말 잘 들어야지~. 장난칠 기색이 있는 거보니 멀쩡해진 것 같네요. 당연! 이에하라는 마타코와 이야기를 나누며 방으로 걸어갔다. 그러던 도중 멀리서 타카스기가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헉, 신스케다! 신스케!! 아, 선배. 뛰지마십쇼!! 이에하라는 마타코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타카스기 쪽으로 달려갔다. 도중에 옆구리를 붙잡고 윽, 했지만. 
 
"신스케,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뛰는 걸 보니 상태는 괜찮은 것 같군."
"그럼~. 내가 누군데! 보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이미 한 번 죽었다 깨지 않았나. 일주일이나 누워있던 건 알고 있냐."
"아, 으응. 울보한테 들었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더라고."
"대원의 말을 들어보니 조금만 늦었더라면 죽을 뻔했다더군. 네놈은 진짜..."
"에헤이, 그래도 지금은 신스케 눈앞에 있잖아?"
"그래, 알겠어. 근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 피범벅이었지?"
"이걸 또 설명해야 되는 건가..."
"말하는 게 좋을 텐데."
"알겠어, 알겠어! 사실은···"
 
 이에하라는 마타코한테 해줬던 이야기를 그대로 타카스기한테 말했다. 잠시 에도에 갔었는데 그 사이에 천인한테 찔렸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며. 그녀의 말을 들은 타카스기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졌다. 이에하라도 말을 하면서 중간에 멈칫했지만 일단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끝까지 이야기를 했다. 
 
"······ 라는 일이었지."
"네놈 전적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심각했군."
"...그렇지? 나도 한 명일 줄 알았는데 여러 명이라서 조금 당황했어."
"얼마나 베었으면 복수를 하는 천인이 있냐."
"아하하,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네..."
"일단 알겠다.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라."
"으음, 나 신스케 방으로 가고 싶은데. 아픈 사람을 혼자 두게 할 생각이야?!"
"...마음대로 해라."
"아싸!!"
 
이에하라는 타카스기의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말을 했다. 타카스기는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해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해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타카스기의 방에 도착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이에하라는 활짝 문을 열어 눈앞에 보이는 이불에 누웠다. 타카스기는 한숨을 쉬며 문을 닫았다. 신스케 이불은 엄청 푹신하다니까. 나도 바꾸고 싶다~. 바꾼 지 얼마 안 됐잖아. 그래도! 이에하라는 그의 이불 위에서 뒹굴거렸고 타카스기는 본인의 겉옷을 정리했다. 정리를 다한 타카스기는 그녀가 누워있는 곳 옆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하라는 그의 옆에 딱 붙어서 헤실거리며 웃고 있었다. 
 
"있잖아, 신스케. 의식 잃었을 때 꿈을 꿨거든? 근데 거기서 신스케가 나온 거 있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꿈속에서도 나타나는 걸까 싶었어. 내가 매번 좋아한다고 하잖아? 그거 전부 다 진심이야. 다른 애들은 장난이라고 웃어 넘어가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그러니까 이번에도 좋아해. 으음, 항상 거절은 하지만 질릴 때까지 말할 거야. 오늘도 좋아해, 신스케."
 
"...네놈의 말이 전부 진심인 건 알고 있었다. 표정을 보면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매번 거절을 했지. 이유는 간단했어. 잘 몰랐거든. 시즈미, 네 말에 흔들려서 잠시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님 나도 너처럼 감정이 있는 건지. 근데 이번 일로 확실해졌더군. 시즈미, 네가 침상에 누워 있었을 때, 사실은 조마조마했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네 고백에 대답은 해주고 싶었는데 떠나버리면 후회할 것 같더군.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지. 이참에 시즈미, 네놈의 말에 대답을 하려고.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응. 나도 너처럼 좋아한다. 네놈의 대답은."
 
타카스기는 이에하라의 말을 듣고 무심하게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이에하라는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정신이 혼미해졌다. 지금 하고 있는 말이 맞는 거야? 거짓말 아니고? 타카스기의 말이 끝나도 이에하라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이에하라. 
 
"잠, 잠시만. 신스케. 정말이야?"
"그럼 네놈 눈에는 내가 거짓말할 사람처럼 보이는 건가."
"그건 아닌데.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니, 그 나도 좋아해!! 응... 좋아해, 너무 많이. 좋아한다는 단어로도 부족할 정도야."
"그럼 됐군."
 
 둘 사이에는 잠깐의 정적이 생겼다. 이에하라는 답지않게 머리를 숙이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러다가 타카스기를 바라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동시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이에하라를 바라만 보고 있었고 이에하라는 타카스기와 몇 초동안 눈을 마주친 채로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신스케, 입 맞춰도 돼?"
"거절한다면?"
"그래도 할 거야."

 이에하라는 눈웃음을 지으며 타카스기에게 다가갔다. 타카스기는 이에하라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쳤지만 뒤로 물러서지 않고 천천히 눈을 감으며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는 그녀를 받아들였다. 어둡고 적막한 우주를 돌아다니는 배 안에서 이에하라와 타카스기는 입을 맞추었다. 긴 입맞춤이 이어지고 먼저 입을 뗀 건 이에하라였다. 
 
"신스케, 좋아해. 너무..."
"여러 번 들어서 이제는 익숙하군."
"질릴 때까지, 밀어낼 때까지 말할 거야. 좋아해, 좋아해."
 
이에하라는 그의 어깨에 기댄 채로 좋아한다는 말만 연속으로 말하다가 서서히 잠들었다. 타카스기는 그녀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에하라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자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고 잠들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이에하라가 깨지 않게 조심히 이불 위에 눕혀줬다. 타카스기는 색색거리며 잠든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시즈미, 네놈의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가 않더군. ...답지 않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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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이에하라는 의식을 잃었을 때, 꿈속에서 타카스기를 보았다. 평소와 같은 모습, 같은 행동, 같은 공간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그를 향해 대답을 했지만 들리지 않았는지 타카스기는 시즈미라는 단어만 연속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그러다 점점 타카스기의 형태가 일그러지더니 순식간에 주변이 검정색으로 가득해졌다. 그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남은 이에하라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타카스기와 다른 이들의 이름을 한없이 외치기만 했다. 그 사이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타카스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즈미, 정신 차려라. 또 이렇게 잃는 건... 신스케? 이에하라가 타카스기의 이름을 부르자 정신이 번뜩 들었고 의식을 차렸다. 타카스기의 마지막 말 때문에 의식을 차린 것.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타카스기를 찾은 것이다. 
 
² 타카스기는 이에하라가 의식을 잃고 침상에 누워있을 때동안 그녀에 대한 걱정이 갈수록 커졌다. 이제는 자신의 일상의 일부분이 된 그녀를 떠나보내기에는 싫었기 때문이다. 타카스기는 매일 그녀의 상태를 보러 갔고 얼른 일어나기를 바랬다. 이 과정에서 깨달은 점은 자신이 생각보다 이에하라를 많이 신경쓰고 있다는 것. 전에는 두렁길에 동료가 뒹굴건 누가 나뒹굴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하라가 조용한 날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 됐고, 기분이 좋을 때는 어떤 이유로 좋아졌는지 궁금했다. 되돌이켜 생각을 해보니 타카스기 본인도 이에하라한테 감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알아차렸는데 그녀가 깨어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타카스기는 이에하라가 의식을 되찾으면 자신의 감정을 말해주기로 결심한다. 

 

 

©︎ 자수 님